한국과 베트남, 비행기로 6시간이지만 역사는 판박이입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적에게 침략당하고, 같은 방식으로 버텼습니다. 호치민 10년 거주자가 직접 느끼는 두 나라의 소름 돋는 평행이론 8가지를 정리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역사가 이렇게 닮은꼴
안녕하세요, 호치민 사는 T입니다.
23년 전 처음 호치민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느낀 게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라는 기본적인 이질감을 제외하면 베트남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하고, 공부 잘하고, 억척스럽게 일하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 기분 탓인가 했는데, 역사를 파고들수록 기분 탓이 아니었습니다.
두 나라 역사, 진짜 판박이입니다.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1. 중국보다 우리가 먼저
한국은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베트남은 기원전 2879년에 반랑국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한국보다 500년 더 빠릅니다.
둘 다 중국 옆에 붙어 살면서 "우리도 역사 길어"를 강조하고 싶었던 겁니다. 중국에 기죽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건국 신화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베트남사람들의 이런 기질, 호치민에서 살면서 매일 확인합니다.)
2. 같은 시대, 같은 적
기원전 108년,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했습니다.
기원전 111년, 같은 한무제가 남월(남비엣)을 멸망시키고 한칠군을 설치했습니다.
3년 차이입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인물에게 침략당한 겁니다. 이게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두 나라가 중국 제국 팽창의 같은 파도를 맞은 거죠.
3. 왕조 흐름도 데칼코마니입니다
한국의 고려 전기, 고려 후기, 조선 전기, 조선 후기.
베트남의 리(Lý) 왕조, 찐(Trần) 왕조, 레(Lê) 왕조, 완(Nguyễn) 왕조.
시기가 1대1로 맞아떨어집니다. 거기에 왕조가 바뀔 때마다 불교 중심에서 유교 중심으로 국가 이념이 이동하는 것까지 똑같습니다.
역사책을 복사 붙여넣기 한 것 같습니다.
4. 공부로 성공하는 나라
전 세계에서 과거제도를 수백년간 유지한 나라는 중국, 한국, 베트남뿐입니다.
한국은 958년에 도입해서 1894년까지. 베트남은 1075년에 도입해서 1919년까지. 세계에서 과거제를 가장 늦게까지 유지한 나라가 베트남입니다.
아빠가 귀족이라서 나도 귀족이 되는 게 아니라, 오직 시험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한 나라였습니다.(물론 한국의 음서제도와 베트남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긴 하지만 장시간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음)
이 교육열이 지금도 이어집니다. 호치민 학교 앞 하교 시간에 오토바이 수백 대가 줄을 서는 풍경, 한국 학원가 앞 풍경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이를 혼다맘이라고 부릅니다.
5. 몽골도 못 이긴 전투 민족
13세기 지구를 정복했던 몽골을 막아낸 나라가 몇 안 됩니다.
한국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며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트남 왕자 이용상이 고려에 귀화해 옹진성에서 몽골군을 격퇴하는데 힘을 보태기도했습니다.
베트남은 쩐흥다오 장군이 강물 속에 말뚝을 박아 몽골 배를 가두고 몰살시킨 바흐당강 전투로 유명합니다. 몽골의 3차례 침공을 모두 막아낸 나라입니다.(강물에 말뚝이라.. 누가 생각나지 않나요?)
한국과 베트남 둘 다 세계 최강 몽골에 굽히지 않고, 막아낸 나라입니다.
6. 우리만의 글자
중국 한자가 불편해서 두 나라 모두 독자적인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15세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베트남은 한자의 소리와 뜻을 따서 쯔놈(Chữ Nôm)을 만들어 19세기까지 사용했습니다. 지금 베트남어 표기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로마자로 바뀐 거고요. (불행히도 베트남 쯔놈은 현재 일부에서만 사용합니다)
한자 문화권 안에서 자기 글자를 만들겠다는 주체 의식. 두 나라가 똑같습니다. 다만, 과거시험에서는 두 나라 모두 한자를 사용했다는 공통점도 존재합니다.
7. 식민지, 분단, 전쟁까지 닮았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부분까지 판박이입니다.
한국은 일본 식민 지배 후 1945년 8월 15일 해방, 38선 분단, 6.25 전쟁.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 후 1945년 9월 2일 해방, 17도선 분단, 베트남 전쟁.
해방 연도도 같습니다. 분단도 당했습니다. 가족끼리 총을 겨눈 전쟁도 겪었습니다.
8. 전쟁 폐허에서 경제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6.25 이후 수출 중심 성장으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한강의 기적.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 이후 연평균 6% 이상 성장, 홍강의 기적.
지금 베트남은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3대 교역국입니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이 베트남 전체 수출의 13~20%를 차지합니다.
벼농사를 짓던 꼼꼼하고 부지런한 민족성이 제조업 강국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자주 묻는 질문 (FAQ)
Q.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A. 중국 옆에서 독자적 정체성을 지킨 것, 같은 시대 한무제에게 침략당한 것, 몽골을 막아낸 것, 과거제도를 오래 유지한 것, 식민지와 분단을 겪은 것, 전쟁 후 경제 성장을 이룬 것까지 8가지 평행이론이 있습니다.
Q. 베트남 왕자가 고려를 구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베트남 리 왕조 왕자 이용상이 고려로 망명해 1253년 몽골 침입 당시 옹진성에서 5개월 넘게 몽골군을 막아냈습니다. 오늘날 화산 이씨의 시조입니다.
Q. 베트남의 교육열은 한국과 비교해 어떤가요?
A. 처음 베트남에 왔을때는 학교앞에 수많은 학부모가 정말 의아했습니다만, 현지에서 10년 살면서 느끼는 건, 한국 못지않습니다. 학교 앞 하교 시간 오토바이 행렬은 한국 학원가 풍경과 다를 게 없습니다. 베트남 학생들의 수학, 과학 성적은 OECD 평균을 상회합니다.
Q. 베트남이 한국의 몇 대 교역국인가요?
A. 현재 베트남은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3대 교역국입니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이 베트남 전체 수출의 약 13~20%를 차지합니다.
Q.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생활하기 좋은 이유가 있나요?
A. 역사적, 문화적 유사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유교 문화, 교육열, 가족 중심 가치관, 음식에 진심인 문화까지 닮아 있어 호치민에서 10년을 살면서도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마치며
23년 동안 베트남을 경험하면서 이 나라가 낯설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같은 적에게 침략당하고, 같은 방식으로 버텼고, 같은 길로 성장했습니다.
비행기로 6시간이지만, 역사로는 0초 거리입니다.
베트남을 쌀국수와 저렴한 물가의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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